활동후기허락은 필요없다[나에게 필요한 건 허락이 아닌, "나의 성생활을 탓하며 불안을 나에게 떠넘기지 않는 사회" 이었습니다]

위티
2020-12-15
조회수 2846

[나에게 필요한 건 허락이 아닌, "나의 성생활을 탓하며 불안을 나에게 떠넘기지 않는 사회" 이었습니다]


작년 여름, 탈가정한 지 막 2년이 되던 차에, 청소년 쉼터에서 나온 내가 짬짬이 모은 돈으로 제일 먼저 한 일은, 산부인과에서 3년짜리 여성 피임 시술을 받는 것이었다.

 나는 여성 청소년 쉼터에서 총 2달 정도를 머물렀다. 머문 기간은 겨우 2달이었지만, 뭐든 규칙부터 내세우며 통제를 우선하던 쉼터 교사(학교 교사는 아니지만, 쉼터에서 모두 ‘선생님’이라고 불렀기에 편의상 교사라고 지칭하겠다)와 매일같이 싸우고 지낸 탓에, 체감 시간으로는 반년도 넘게 지낸 것 같았다. 쉼터 교사들은 모든 것에 이해할 수 없는 규칙을 세웠는데, 소지할 수 있는 물건의 종류부터 시작해서 주말에는 어디에 있을 수 있는지, 누구를 만날 수 있는지, 심지어는 내 몸을 내가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까지 규칙을 내세웠다.

 규칙밖에 모르던 교사들은 몰랐겠지만, 쉼터 안에는 그 규칙을 넘나드는 존재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성 노동으로 삶을 연명하던 청소년도 있었고, 남자친구와 콘돔 없이 섹스하는 청소년도 있었다. 그중 섹스 이후 몸의 불편함을 겪는 이들이 있었지만, 겪고 있는 불편에 대해 함부로 입에 올릴 수는 없었다. 규칙을 어긴 것에 대한 처벌이 걱정되는 것은 물론이고, 쉼터에서 계속 봐야 하는 교사들이 앞으로 자신들을 어떻게 낙인찍을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뒤에서 친권자들과 함부로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한 교사들에게 섣불리 사적인 얘기들을 털어놓았다가는 친권자들에게 어떤 말이 전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쉼터에서 나와 잘 알고 지낸 한 청소년은 생식기 부위에 심한 불편함을 느껴 담당 교사에게 자신이 섹스를 했음을 실토하고 병원비를 지원해 달라 요청했다가 “왜 함부로 잠자리를 가졌냐” 라며 ‘무책임하게 행동한 것’에 대한 비난을 1시간 동안이나 들었던 적도 있었다. 결국 그 청소년은 지원을 받을 수는 있었지만, 교사 앞에서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쩔쩔매며 눈치를 봐야 했고 이후 더욱 철저해진 감시 때문에 한동안 말없이 위축된 모습으로 지내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쉼터의 청소년들은 이후 더욱더 교사 앞에서는 절대 자신의 섹스나, 그와 관련된 불편함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감당할 수는 없었던 그런 불안들은 쉼터의 다른 청소년들에게 공유되었다. 혹시라도 덜컥 임신을 하게 된다면 가급적이면 혼자서, 청소년들끼리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당연하게 전제되고 있었던 것이다.


불안과 위험은 오직 나의 몫

탈가정·탈학교를 하기 전부터 ‘임신한 여학생이 중절 수술을 받을 수 없어 학교 계단에서 일부러 굴렀다’는 얘기나, ‘성병에 걸려도 청소년은 혼자 병원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 ‘학교 그만둔 여자애는 사실 임신 때문’ 같은 얘기들은 다니던 중·고등학교에서 심심찮게 들리던 소문들이었다. 학교에서는 헛소문이라며 입을 막기 일쑤였지만, 집에 돌아와도 그런 괴담은 반복되었다. 부모는 언제나 내가 그런 소문의 주인공이 될까 겁내며 나를 구속하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내 복장과 주변인들을 감시하며 조금이라도 일이 날까 전전긍긍했다. 좋게 말해 전전긍긍이지, 내 가방을 뒤져 나온 화장품을 깨부수고, 짧은 치마를 입으면 험한 말로 모욕을 주고, 면전에서 내 얼굴을 흉보며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결국 부모는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사건이 터지면 나나 내 복장, 내 친구들을 제일 먼저 탓할 것이라는 암시를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

 나를 보호하기보다 탓하려는 의지가 강해 보이던 쉼터, 학교, 가정을 거쳐오며, 나는 누구에게도 편안하게 의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밖에 없었고, 그래서 돈을 모으자마자 비싼 돈을 들여 피임 시술을 받았다. 시술을 받고 돌아오던 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안심하며 새삼스레 생각했다. 내가 이 사회에서 여성 청소년으로서 살아오면서 섹스 이후 닥칠 수 있는 어떤 위험들이 나의 탓 혹은 나 혼자만의 몫이 될 것이라는 위협을 끊임없이 받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는 것을.

 2020년 10월 7일, 대한민국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판결에 따른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 입법 예고안을 발표했다. 입법 예고안은 임신 14주 이전의 인공 임신 중절만을 허용하며, 사실상 낙태죄를 유지하는 법안이다. 또한 만 18세 미만의 모든 청소년은 시술을 위해 상담 사실 확인서를 제출해야 하고,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은 법정 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만 임신 중지를 할 수 있다. 법정 대리인이 없거나, 법정 대리인으로부터 학대 상황에 처해 있음을 증명하는 공적 자료를 제출해야만 법정 대리인 동의 없이 시술을 할 수 있다.

 입법 예고안에서 특히 학대 상황을 증명해야만 법정 대리인 동의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탈가정 이후 청소년기 내내 이어졌던 부모의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폭력에 대해 아동학대 혐의로 부모를 신고하려고 했다. 증거 자료로 중학생 때부터 지속적으로 받아 온 상담 자료를 사용하려고 과거에 상담했던 교사들을 찾아갔지만, 교사들은 모두 부모에게 연락해서 나를 다시 데려가게 하거나 부모가 나에게 저지른 폭력을 별 것 아닌 일로 처리해 버리려고 했다. 경찰에 연락해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네가 말을 안 들었으면 부모가 그랬겠냐’는 둥, ‘그냥 꾹 참고 다시 집에 돌아가서 얘기를 나눠 보라’는 둥 나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나를 돌려보내기에만 급급했다. 위급한 상황에 찾으라던 경찰과 학교 모두 나의 도움 요청을 묵살했다.

 쉼터에서 만난 청소년들도 대부분이 가정폭력 피해를 입고 도망쳐 나온 이들이었지만, 부모로부터 피해를 받았음을 인정받아 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거나 학대 상황이 증명되었다는 사람은 극히 일부밖에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불량하다거나 어딘가 문제 있는 청소년이라는 낙인을 받고 쉼터에서 일상을 억압당한 채로 살아야 했다. 이런 상황을 보고 겪은 나에게 발표된 정부의 입법 예고안은 무지와 악의로 느껴졌다. 청소년의 얘기를 듣지 않아 피해를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학대 상황에 처해 있음을 증명하는 공적 자료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인가? 더욱이 우리 사회는 극단적이고 물리적인 폭력만을 아동학대로 인정하기에, 청소년이 가정에서 겪은 다종다양한 폭력이 학대로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학대 상황을 증명하라는 것은 당사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또 다른 폭력이 되기만 할 것이다.

주 수 제한은 청소년에게 더 큰 위협

쉼터에 있던 청소년들이 섹스 이후 몸이 아파도 아프다 함부로 말 꺼내지 못했던 것은, 쉼터 교사에게 낙인찍히는 것이 걱정되어서는 물론, 자칫해서 그 얘기가 부모의 귀에라도 들어갈까 두려워서였다. 나도 내 앞에서 ‘문란해 보이고 싶은 거냐’고 고함치며 화장품을 던져 부수던 부모의 모습이 생생하다. 두려움에 학교 계단에서 굴렀다는 여학생의 소문도 마찬가지다. 법정 대리인 혹은 부모인 사람들에게 청소년이 자신의 성적 행위를 고백하는 것은 가정에서 완전히 내쫓길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다. 사회에서 찍힐 낙인과 더불어, 부모의 폭력이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자신의 성적 행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말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주저하다 법이 제한해 놓은 ‘주 수’를 넘기고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대개의 청소년은 긴 시간 학교에 묶여 있으며 의료 정보나 법률 정보 등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임신 사실을 자각한 뒤에도 여러 가지 정보를 알아보다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거기에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까지 거쳐야 하니, 임신 중지 주 수 제한은 청소년에게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쉼터를 나와 피임 시술까지 받고도 피임 기구 미사용으로 성병에 걸려 입원까지 했던 적이 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청소년의 삶을 계속해서 더 큰 위기로 내모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실감하게 되었다. 사회가 여성 청소년의 성적 행위나 임신 등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며 혼내고, 통제하고, 정보에 접근하기를 막으면 막을수록 상황은 점점 더 위험해질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함부로 섹스를 하고 임신을 한 청소년을 ‘벌해야 한다’는 사회가 이루는 것은 ‘생명의 존엄성’도, ‘임신 중절 수술 남용 방지’도 아니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와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할 책임을 방기한 무책임한 국가의 폭력일 뿐이다. 나를 포함해 섹스하는 청소년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내 몸에 대한 규칙도, 허락도, 처벌도 아닌, 성생활을 ‘탓하며’ 위협하지 않는 사회였다. 정부의 입법 예고안은 ‘탓하기’에서 벗어나지 않고 제자리걸음 하는 악법이다. 모두를 위협하는 사회는 이제 정말 변해야 한다. 낙태죄 완전 폐지는 그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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